감사함
저는 의사로서 일을 시작한지 7년차 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소위 빅 5 병원이라는 대한민국 굴지의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하였습니다. 인턴, 레지던트 시기는 고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쪽잠을 자며, 환자를 보았고 때론 선배와 교수님께 혼나가면서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힘들게 지내다보니, 그 속 안에서의 5년은 정말 길었지만,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어 때론 참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지던트 기간동안에는 정말 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에 매진하였습니다. 밤늦게 수술이 끝나면 집에서 피로를 녹였으며, 다음날 새벽이 되면 다시 씻고 출근해서 밤이 늦으면 퇴근을 하는 삶이 반복이었습니다. 반복된 삶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휴가기간에 놀러갔던 해외여행과 친구들과 보냈던 그 짧은 순간순간이 다입니다.
그 때에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견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게 되면 다가오는 전문의의 삶이 저를 빛나게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레지던트 생활이 종료되는 그 시점부터 제가 갑작스럽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레지던트가 끝나갈 시점,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저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변화할 줄 알았던 저의 신분은, 국가의 부름 앞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서의 삶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잠 못자며 공부했고, 그 이후에도 열심히 공부한 뒤, 5년의 레지던트기간을 거친 저에게 3년이 넘는 공중보건의 기간은 달콤한 휴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선배님들은 그렇게 저에게 말씀해주셧습니다. 그러나 공중보건의의 삶은 선배님들께서 말씀하셨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국가의 코로나19 위기상황 속에 훈련소 일정도 뒤로 미룬채 국가위기대응에 투입되었습니다.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국가의 수많은 환자들의 검체를 채취하였으며, 생활치료센터, 임시생활시설, 요양원 등을 전전하면서 의사가 필요한 곳에 공공재로 투입되었습니다.
지금 공중보건의 2년차로 근무중에 있습니다. 지금도 환자분들께 코로나 약을 지어드리고, 문진을 하고, 검체를 채취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추구했던 장밋빛 미래가 여기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부유함 삶과 매달 들어오는 풍족한 급여, 남부럽지 않은 시선들이 여기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이상 그런 곳에서 나의 미래를 찾아선 안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좌절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레지던트 때 저를 견디게 해주었던 것이 진정으로 나의 미래에서 오는 것일까 라는 것에 고민하였습니다. 그 순간 제 앞에 다가온 환자가 저에게 정답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환자를 진료하고 환자가 돌아서는 순간 저에게 내뱉은 말이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환자가 내뱉은 말은 다섯음절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고, 그런 말을 해주신 환자에게 고마웠습니다.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이 좋았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속에서 찾은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환자에게서 받는 감사하는 말 한마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감사함은 환자를 질환이나 통증에서 해방시켜 줌으로써 나오는 말이었고, 우리가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진정성 있는 한마디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의사선생님들은 항상 바쁘고, 항상 피로에 찌들어 삽니다. 그렇지만 환자분들이 내뱉어 주는 한마디가 피로와 고민속에 사는 의사들에게 위로의 한마디가 될 수 있습니다. 환자가 감사하다고 할때마다, 저는 그런말을 해준 환자에게 오히려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쩌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서지역에서 근무하다가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을 많이 느낍니다. 의료라는 행위에 가치를 더해주는 것은 내가 아니고 환자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내가 생각한 장밋빛 미래의 방향이 조금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윤택하고, 풍족한 삶에 온전한 무게를 두었던 20대의 나에서, 감사함의 가치에 중심을 좀 더 두려고 합니다. 조금씩 매말라가는 사회속에서 이러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공중보건의사 시절은 저의 마음을 좀 더 넓혀주고 있다는 점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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